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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5:18-19]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한일서 3:13-16]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사순절에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주께서 많이 말씀하셨던 ‘미움’에 관한 주제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매우 힘들게 되는 것은 미움이 청산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또 ‘분노’라는 것이 있습니다. 왜 사람이 분노가 일어납니까? 그 안에 미움이 있기에 분노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분노와 미움은 맥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확장되면 폭력이 나오고, 폭력이 더 확장되면 살인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된 것입니까? 그것은 미움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 안에 미움이 있는 것입니까? 미움은 오해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남을 오해할 만한 인자가, 다른 말로 하면, 오해할 만한 정보가 내 안에 들어와 있기에 미워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아주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 안에 있는 미움이 발생되는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 시대 가장 고상하고 거룩하다고 자칭하는 성전을 지키는 자들(사두개인)에게 주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바리새인에 대한 책망은 마태복음 23장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서 났고 그는 살인하는 자요 거짓말하는 자(요 8:44)’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너희 아비로 인해’ 이미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원죄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거짓이 끊임없이 계승되어 내려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이 자꾸 퍼트려지는 것입니다. 미움은 미움을 낳고 자꾸 확산되는 것입니다. 자꾸 자꾸 커집니다. 우리가 이를 알아야 하고 이것을 잘라내야 합니다.

 

주님은 미움을 어떻게 이기셨습니까? 그 미움의 영을 죽음으로 이기셨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청산되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속죄의 날에 속죄양(scapegoat)이 모든 것을 다 뒤집어 쓰고 죽으면 청산이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속죄양이 대신 죽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과 4장의 두 개의 죄의 뿌리를 청산해내신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순종’이었고, 우리를 향해서는 ‘사랑’이었습니다. ‘순종’은 ‘교만’을 이긴 힘이었고, ‘사랑’은 ‘미움’을 이긴 힘이었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셨고 승리자가 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미움이 왜 생겼습니까? 창세기 4장의 미움이 어디서부터 생겼습니까? 우리가 그 미움의 뿌리를 찾아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찾았다면 어떻게 잘라낼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냥 놔두면 자꾸 계속해서 뿌리가 번지고 번식합니다. 사순절에 우리는 이런 것을 깊이 파고 들어가서, 말씀이 나에게 살아 역사하는 운동력이 되게 해야 합니다. 백성이 하나님의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했습니다 (호 4:6). 어둠을 이기는 힘은 빛이듯이, 미움의 힘을 이기는 것은 진리입니다. ‘아, 이거였구나’하고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사순절에 우리가 깊이 말씀을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진리가 우리 안에 들어오면,그것이 빛이 되고 우리의 생명이 됩니다. 영은 죽음의 영이 있고 생명의 영이 있습니다. 죽음을 이기는 힘은 생명입니다. 그리고 빛입니다. 그것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아 내가 속았구나’라는 것을 깊이 있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명의 법 아래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8장에 바울은 ‘생명의 법’을 강조했습니다. 바울은 율법에 아주 찌들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의 기초에 철저히 서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법이라는 것은 원래 형평을 말합니다. 형평의 기초 위에 법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를 미워하라’는 법이 사실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고 사랑할 자를 사랑하는 것이 형평이고, 그 형평이 정의로운 것이고 옳은 것입니다. 그것이 법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나는 이렇게 가르친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미워할 자를 미워하는 곳에서는 새로운 세계가 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차원이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유대인들은 오해를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법을 깬다고 생각했고 그에 대한 강한 반발이 있었던 것입니다. ‘간음한 자를 돌로 쳐서 죽여라.’ 이것이 율법이었습니다. 그래야 죄가 깨끗이 청산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죄없는 자가 치라’고 하셨습니다. 죄인이 죄인을 심판할 수 없다는 것을 율법학자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그 여인을 치지 못했습니다. 돌 위에 새겨진 십계명이 있었고 그것이 확장된 것이 율법이었고 그것이 종이에 쓰여져 세워진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법이 있었습니다. 주께서 그것을 땅에다 쓰셨습니다. 이 우주에 새겨진 근본적이고 더 큰 법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용서’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법’입니다. 세상법도 보면, 헌법이 있고 그것을 기초로 해서 그 위에 만들어지는 각종 법과 시행세칙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법도 그 모든 법 중에 가장 기초가 되고 제일 큰 법이 있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돌과 종이 위에 세워진 법보다 더 근본적인 법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생명의 법’이라고 했습니다. ‘사망의 법’ 앞에 ‘생명의 법’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 법은 바로 ‘사랑의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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