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유럽선교의 첫번째 교회로서 바울이 정말 사랑했던 교회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 빌립보서는 바울의 옥중서신입니다. 빌립보의 교우들에게 보냈던 바울의 아름다운 편지입니다. 여기 2장 6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6)”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되면, 우리 안에 평화가 임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이어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오늘 본문인 빌립보서 2장 6~11절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빌2:6)”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2:7)”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8)”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낮추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설명 안에는 사랑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 설명을 듣고 사랑을 느낍니까? 바울은 지금 헬라어로 케노시스(Kenosis)를 말하고 있습니다. 케노시스는 비움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얘기하는 사랑입니다. 이것은 매우 수준이 높은 설명입니다. 바울이 설명하는 사랑이 무엇이냐면,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의 본체이시고 하나님과 동등되신 분인데 그것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낮춰서 죄 많은 현실 가운데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은 낮아지는 마음이요 비워지는 마음입니다. 이 ‘낮아짐과 비워짐’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충만’입니다. 헬라어로는 플레로마(Pleroma)입니다. 케노시스의 반대말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어떤 분이냐면, 먼저 비워졌다가 충만하게 되신 분이라고 바울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수준 높은 가르침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빌2:9)”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하시고(빌2:10)”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11)”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의 현현의 방식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그 방식은 케노시스(Kenosis)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움입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2:7)”
바울은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8)” 예수님의 삶 전체가 희생과 자기 낮춤과 비움과 순종이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