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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무거운 죄를 지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정반대의 삶을 살았습니다. 마태복음 2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꾸짖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에 대한 여러 가지 책망이 길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4절을 보십시오. (마234로 외우면 쉽게 외울 수 있습니다.)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마 23:4a). 그 시대 최고로 경건하고 구별된 자라고 했던 사람들 안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장 모범적으로 살고 있다고 여기고 하나님 말씀을 맡아서 가르친다고 하는 자들 안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웠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마 23:4b). 무거운 짐을 남의 어깨에는 지우고, 자기는 한 손가락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리새인의 문제였습니다. 주께서 그런 사람을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한 구절을 더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5절부터 보겠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5-27). 그리고 이어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여기에 2개의 짐이 나옵니다. 하나의 짐은 우리가 벗어야 할 짐입니다. 그 짐은 우리 인생을 가장 힘들게 하는 짐입니다. 그 짐은 죄의 짐입니다. 주께서 그 짐을 담당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또 하나의 짐이 여기 나옵니다. 주께서 “나의 멍에(나의 짐)”를 지라고 하십니다. 주의 멍에는 주께서 지고 가시는 짐입니다. 소 두 마리가 밭을 갈 때, 멍에를 함께 멥니다. “멍에를 지고 내게 배우라. 그런데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뭐가 쉽고 뭐가 가벼운 것일까요? 이 짐은 사랑의 짐이기때문에 쉽고 가벼운 것입니다. 이 구절은 우리가 깊이 묵상해야 할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마태복음 11장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결론과도 같은 구절입니다.

 

여기 나오는 짐에 대해서 우리가 잘 알아야 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죄의 짐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할 때, 사람들에게 이 죄의 짐을 잘 알려주어야 합니다. 번영신학을 강조하는 교회가 좋은 점도 많이 있지만, 그들이 비판을 받는 것이 딱 하나 있습니다. 그들의 교회에 가면 굉장히 교인들이 많고 기쁨이 넘쳐 흐르지만, 문제는 죄를 얘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죄를 얘기하지 않음으로 교인들이 인생의 무거운 짐을 그대로 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죄의 짐이 무엇입니까? 죄에 대해서 가르쳐주는 곳이 로마서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롬 1:21). 인간은 하나님을 알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고요히 인간이 자기 내면을 돌아보면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어진 세계를 보고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해져서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이것이 일그러진 인간의 모습입니다.

 

성경에 모든 게 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적으로 오랜 세월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선민을 통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도들과 수많은 증언자들에 의해서 계시된 말씀입니다. 그 계시의 빛이 사도들을 통해서 밝히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것보다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잘 보고 설명해야 됩니다.

 

인간 영혼이 제일 힘든 것은 죄 때문에 힘듭니다. 인간 영혼이 절망하는 근본적 이유는 인간이 다 죽게 되어있고 그 다음에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인은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미래는 밝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이 어떻게 전환되어야 되는 것입니까? 주님의 삶의 방식을 따라서 전환되어야 합니다. 주님과 달리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마태복음 23장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마23:4)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의 삶의 방식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주님은 ‘속죄 제물’로, ‘대속물’로 사셨습니다. 우리가 이 사순절기간 동안 이 의미를 깊이 깨닫기 바랍니다. ‘아, 이것이 사랑이구나.’ 우리가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전할 때, 사람들에게 그것이 들릴 것입니다. 진공 상태에서 소리가 안 들리듯이, 사랑을 모르면 아무리 말해도 복음이 안 들립니다.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능력임에 분명한데, 안 들리는 것입니다. ‘아, 내 죄(=내 짐)을 담당하시고, 내 죄를 대신 지시고 그 생명과 맞바꾸신 것이구나.’ 이것이 맥점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깊이 묵상하고 깨닫고 그 사랑에 깊어지는 기간이 사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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