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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한나 5007

 

도서: 부모라면 유대인처럼

 

아버지의 의자를 마련하다

시골에 사는 한 유대인이 아들을 예루살렘의 학교에 입학시켰다. 아들이 공부하는 사이 병이 들어 죽게 되자, 유서를 썼다. 전 재산을 한 노예에게 물려주되, 그중에서 아들이 바라는 것을 꼭 한 가지만 주라는 내용이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아들은 랍비에게 찾아가 불평을 했다. "왜 저에게 재산을 조금도 물려주시지 않았을까요?" 랍비가 대답했다. "자네를 진심으로 사랑하셨으니까!" 아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랍비가 이렇게 설명했다. "아버지는 노예가 재산을 갖고 도망치거나 마구 써버리거나, 심지어 자기의 죽음조차 자네에게 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전 재산을 노예에게 주신 거네. 그러면 그가 기뻐서 자네에게 달려가 그 사실을 확인시키고, 재산을 소중히 간수할 테니까." "그것이 제게 무슨 소용입니까?"

"젊은 사람이라 역시 지혜가 모자라는군. 노예의 재산은 모두 주인에게 속한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아버지는 자네가 원하는 것 중 한 가지만은 물려 주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나?"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는 40대 중

반의 K씨는 공사다망하다. 퇴근 후 회식과 사교 모임에 절대 빠지는 법이 없다. 웬만한 대학의 최고경영자 과정은 모두 섭렵했고, 고교 동창회 총무도 맡고 있다. 주말이면 직장 상사나 동창회, 향우회 등 의 골프모임에 단골로 참석한다. 지방대 경영학과 출신인 자신이 임원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몸을 사리지 않고 인맥관리에 매달렸기 때문이라는 게 K씨의 생각이다. 가족을 위해 몸바쳐 희생하고 있으니 아내와 자녀들도 이해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남편과 지낼 시간이 거의 없는 아내는 주말까지 골프장으로 향하는 남편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아이들 교육을 오로지 자신의 몫으로 돌리는 태도도 원망스럽다. 아이들에게도 아빠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이다. 눈을 뜨면 아빠는 이미 출근하고 없고, 한밤중이 되어서야 술에 취해 귀가하기 일쑤이다. 모처럼 일찍 들어와도 피곤하다면서 거실에 누워 텔레비전만 본다. 학교 선생님을 만나 상담을 하는 것도, 학원을 결정하는 것도, 책을 사주는 것도 모두 엄마의 몫이다. 아빠는 그저 때가 되면 용돈을 주고 학비를 대주는 사람일 뿐이다. 씁쓸하지만 낯익은, 우리 아버지들의 자화상이다.

소아과 전문의 이형민 씨네 집은 좀 다르다. 이씨는 결혼 후 30여년 가까이 부모님을 모셨고, 지금은 장모님을 모시고 산다. 그러면서 반드시 지키는 원칙이 있다. 하루 한 번은 꼭 가족들과 식탁에서 만나는 것. 아침 7시부터 7시 10분 사이에 가족이 한데 모여서 식사를 하는데, 이 원칙은 그 시간에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아무리 늦게 자는 사람도 아침 7시에는 식탁에 앉아 있어야 한다. 네 자녀가 모두 성장해 저녁에는 다들 바쁘기 때문에 함께 모일 수 있는 아침시간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자리 잡으면, 애들이 다 크면, 하는 식으로 삶의 즐거움을 유보하고 자기 생활을 희생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애들 다 크고 가정으로 돌아와 보면 아버지의 자리는 사라져 있죠. 그러지 말고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조금씩 하는 것이 좋아요. 아빠 노릇, 남편 노릇을 시시때때로 해야죠."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아버지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다. 자식을 생산할 수 있는 선택권은 오직 아버지에게만 있었다. 아버지가 원치 않는 아이는 사라져야 했다. 초기 로마 시대의 낙태는 유산 상속인의 숫자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아내와 아이들에 대해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남편에 의해 결정됐다. 아버지는 정치와 전쟁 등 외부 세상과 대면하는 일을 하고, 어머니는 자식을 먹여 키웠다. 산업혁명과 근대화를 거치면서도 굳건히 살아남는 듯 했던 남성 중심의 가부 장적 질서는 이제 종언을 고했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역할, 아내와 자녀들의 아버지에 대한 기대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국제분석심리학회장을 지낸 이탈리아 출신의 정신분석학자 부이 지 조야는 오늘날 부성이 처한 상황에 대해 "어머니에 비해 아버지에 대한 자식들의 기대치는 높고 엄격하다"고 말한다. 자식들은 아버지에게 단순한 사랑 이상의 것을 원하고, 아버지가 강한 사람이 기를 바란다. 때문에 점차 온화한 이미지로 변한 아버지를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나약한 사람으로 여기며, 아버지보다 동료를 더 신뢰한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아버지는 가정의 최고 권위자이자 자녀의 교사라는 지위를 빼앗기고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 정도로 추락한 게 사실이다.

서울 강남지역에선 한때 이런 우스갯소리가 유행했다. '자녀를 SKY 대학(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보내려면 네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할아버지의 재력, 아버지의 무관심, 어머니의 정보력, 그리고 아이의 체력이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무관심해야 명문대학에 보낼 수 있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는가. 아버지의 권위가 사라지고, 더 이상 자녀교육에서 마땅한 역할을 찾지 못하는 부권 상실의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얘기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설 자리를 잃어가는 시대 흐름 속에서도 유대민족은 아직도 부계사회의 전통을 굳건히 지켜 가고 있다.

유대인 가정에는 남녀 차별이 없다. 당연히 육아는 공동 책임이다.

하지만 성별 분업은 존재한다. 아버지의 권위를 통한 교육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유대인 가정에는 아버지만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따로 마련돼 있다. 그만큼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유대인 아빠는 직장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퇴근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과 놀아주고 하루 일과에 대해 대화를 하며, 여유가 생기면 주로 독서를 한다. 아이들은 책을 읽는 아빠를 따라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흉내를 내고 습관을 들이게 된다.

유대인 아빠는 자녀가 성인식을 치르기 전까지 학교교육과는 별도로 역사와 율법, 도덕을 가르친다. 이를 통해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동기 부여를 한다. 특히 매주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 지키는 안식일에는 텔레비전 시청은 물론 운전까지 금하고 철저히 집에 머물며 독서와 토론으로 하루를 보낸다. 가정의 중심으로서 자녀교육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베트남 분쟁을 해결한 공로로 1973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유대계 미국인 헨리 키신저는

"어려서 아버지를 통해 배운 성경 지식이 언제나 나의 삶을 지배한다. 성경에 정치적 원리가 전부 다 들어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한국 아빠들은 육아를 엄마의 몫으로만 여겨 손을 놓은 경우가 많다. 흔히들 "마음은 있지만 시간이 없다", "잘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안 된다"고 말한다. 실제로 한 조사결과를 보면, 한국 아빠들이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15~30분, 자녀와 얼굴을 마주하는 횟수는 하루 평균 2.7회에 불과했다. 그런데 한국 아빠들은 정말 시간이 없는 걸까. 밥도록 소주잔을 기울이거나, 주말마다 골프정에서 굿샷을 외칠 시간은 있지 않은가. 인맥을 쌓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사회적 성공을 위해 아빠 역할을 포기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