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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25일차 

 

[요 18:20-2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의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히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저희가 나의 하던 말을 아느니라

본문은 너무나 중요한 말씀입니다. 음모의 세력들, 가증스럽게 주님을 팔고 죽인 자들과 대결하는 그리스도의 놀라운 지혜의 넓이와 깊이를 보십시오. 저들이 칼을 가지고 와서 찌르고 있습니다. 주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저희가 나의 하던 말을 아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대제사장들은 냉소의 웃음을 지으면서 “네가 어떻게 가르친다는 것을 증언할 증인 한 명을 확보했노라.”고 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산헤드린에서 열린 종교재판이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유대공동체로부터 예수공동체를 축출하고 그들을 이단으로 완전히 정죄하려고 했습니다. 이들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권세는 없었습니다. 십자가형은 로마법에 의한 처벌이었습니다. 그것은 로마법에 따라 재판해야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본문의 논쟁은 예수님을 올무로 잡으려는 논쟁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으로부터 무엇인가 흠을 찾으려는 논쟁이었습니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산헤드린의 재판에서 대제사장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권세에 도전하는 자들을 잡아 꺾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산헤드린에서의 증언은 두 명의 증인이 필요했습니다. 혼자 증언하는 것은 효력이 없었습니다. 반드시 두 증인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서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대제사장의 집 뜰에 두 명의 제자가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여기 언급된 ‘대제사장과 잘 알고 있는 제자’는 누구였을까요? 그 제자가 베드로를 대제사장의 집 뜰에 데리고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이 제자가 누구였을까요? 요한 같기도 하고, 유다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갈릴리 어부 출신의 제자가 어떻게 대제사장을 잘 알 수 있었을까요? 사실 그것은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다른 제자는 유다일지도 모릅니다. 유다는 그들과 은밀한 내통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갔을지 모릅니다. 아마도 포악한 종교지도자인 안나스가 유다 외에 예수의 다른 제자 하나를 찾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반드시 내고 싶었던 결론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희가 가르친 교훈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친 많은 말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교훈을 묻고 있습니까? 안나스는 무엇으로 예수를 잡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자신의 종교 권력에 도전하는 예수를 잡으려고, 그는 지금 큰 비밀 하나를 거머쥔 것입니다. 그것은 유다를 통해 들어온 은밀한 비밀이었습니다. 안나스는 유다에게 은 30 냥으로 그것을 산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 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안나스는 지금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내가 대답을 너에게 한다고 할지라도 네가 믿을 것이냐? 어차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아니냐.”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이 논쟁의 포인트입니다.

그들은 어차피 주님을 받아 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저 주님을 결박하려는 음모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들 안에 있는 음모를 너무도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너희의 말의 근본적인 의도가 무엇이냐? 나를 결박하려고 하는 음모가 아니냐? 그러므로 너희의 거짓 증거나 음모에 의해 증언한 것에 대해서 내가 대답할 수가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올무를 쳐놓고 예수님을 잡을 것만 노리고 있었습니다. 만일 주님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시인하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이 재판의 목적은 진정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주님을 결박해서 정죄하고 죽이려는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진 재판이었습니다. 그들은 67 자신들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들은 하나님의 편에선 절대 진리요 절대 정의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더럽힌 자들이었고,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지극히 가증스럽고 위선적이고 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처럼 사람의 생명을 살리려고 하거나 회개와 구원으로 인도하는 자들이 아니라, 사람들을 유혹하고 정죄하고 살인하려는 독사의 자식들이었을 뿐입니다. 이것을 앞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의 사건을 보면 볼수록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