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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24일 묵상 말씀>

 

제목: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본문: 요한복음 18:19

 

[요 18:19]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요한복음 18 장 19-21 절의 내용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향한 공격이 있었습니다. 이 공격은 협공(A double attack)이었습니다.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이 힘을 모아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참으로 비참한 죽음이었습니다. 악이 그 최후의 모습을 모두 드러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이 야합한 것이었습니다. 로마의 권력을 가진 자들과 종교 권력을 가진 자들이 야합해서 주님을 죽였습니다. 들개들이 같이 함께 공격해서 어린 양을 죽인 것과 같습니다. 특히 성전을 지키는 자들이,주님을 영접해야 될 자들이, 그 길을 닦아야 하는 자들이, 호산나를 외치면서 예루살렘과 성전으로 입성할 길을 열어놓아야 할 자들이,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환호해야 할 자들이 주님을 잡아 심문하는 눈물 나는 비극의 역사의 현장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안에 무엇이 있습니까? 분노가 있습니다. 근거 없는 자기 정당성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보자면, 자신들이 정통이고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이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 나는 참인데 너는 거짓을 지금 말하고 있노라.”고 했습니다. 그들 안에 예수님과 제자들을 향해서 굉장히 큰 분노가 있습니다.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고 했습니다. 뒤에서 보면 이들 종교지도자들은 빌라도에게 “가이사 외에는 다른 왕이 없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전을 지킨다고 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왕이신 하나님(삼상 12:12)을 버리고 가이사가 왕이라고 하는 악의 극치를 보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있는 생각은 어떻게 해서든 예수만 죽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를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절대적인 의이고 선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분노가 왜 그들에게 있었습니까? 근거가 없는 분노였지만, 그들에게는 그를 반드시 죽여야겠다는 분노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배반자인 유다의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말을 들었을 때, 너무나 충격을 받고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것 같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상황에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증언을 들었어야 했습니다. 무조건 분노만 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려 문제를 풀어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유다의 말만을 듣고 이미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틀렸고, 잘못된 교훈을 가르치는 이단이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말은 아무리 옳은 말이라 할지라도 변명이고, 자기들을 속이고 감추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을 향해서 귀를 닫아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심각한 죄인인지 모르고, 오히려 주님과 제자들을 정죄하고 심판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대제사장들이 얼마나 거짓된 자들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분노가 일어나면, 그것이 근거가 있는 분노인지 없는 분노인지를 살펴보는 일이 백성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될 지도자가 가져야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아닙니까? 그러나 그들 안에는 분노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까닭 없는, 근거 없는 분노였습니다.하지만 그들 안에는 근거 없는 자기 정당성이 있었습니다. 사단의 공중 권세에 그들도 사로잡힌 것입니다. 아무런 근거가 없지만, 공격하는 자 안에는 너무나 무시무시할 정도의 분노가 있습니다. 공격하는 자 안에 자기 정당성이 있습니다. 자신을 스스로 정의의 사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분노하게 한 것을 가지고 와서 상대방을 공격합니다.

안나스가 왜 그의 뜰로 예수님을 잡아오게 했습니까? 자신의 종교적 권력에 대한 도전자로 예수님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성전을 장사치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시며 성전을 뒤집어 엎으셨습니다. 성전정화, 성전청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전이 너무나 타락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더 나아가 “성전을 헐라. 내가 다시 일으켜 세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전의 성전을 헐고 새로운 성전을 다시 세우는 성전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전을 이용해 밥벌이 하고 있는 자들,성전을 장사치의 소굴로 만들고 있는 자들, 예수의 행상을 하고 있는 자들, 자신의 교권을 유지하고 있는 자들에게 무시무시한 도전으로 다가왔습니다. 교회의 권위와 권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교권주의자들이 자신의 안위와 영화를 위해서 자신들의 권위와 권력을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잘못되고 거짓된 자들입니까? 그들이 복음의 길에서 벗어난 이단이 아닙니까?

누가복음 22 장에서 누가는 안나스에 의해서 심문 당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마태복음 26 장과 마가복음 14 장, 그리고 요한복음 18 장에도 공통적으로 심문의 사건에 대해서 기록했습니다. 그들이 알게 된 큰 비밀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그 공동체를 공격할 큰 결점을 찾았습니다. 그 비밀은 어디서부터 왔습니까? 배반자로부터 왔습니다. [요 13: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유다가 밤에 나갔습니다. 그 밤에 어디로 갔습니까? 안나스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로 가서 비밀을 고했습니다.그래서 지금 심문을 당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누가 누구를 심문하고 있는 것입니까? 안나스가 예수님을 심문했습니다.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안나스가 심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에게는 사실 주님을 심문할 아무런 권세가 없었습니다. 그는 현재 대제사장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이전의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안나스는 예수를 잡으려고 했던 모든 일의 배후의 인물이었습니다. 더러운 교권의 배후의 원흉이었습니다. 안나스는 로마의 권력과 결탁해서 성전에서 나오는 돈으로 치부하고, 그 더러운 돈으로 자신의 교권을 지켰던 가증스러운 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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