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21일 묵상 말씀>
제목: 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본문: 요한복음 18:2~6
[요 18:2] 거기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가끔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이곳은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모이셨던 곳이었습니다. 요한은 “거기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가끔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고 했습니다. 유다는 그곳에 있었던 자였다는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깊은 세계의 말씀을 들었고, 주님의 사랑의 권면과 가르침을 받았을 뿐 아니라, 주님과 삶을 함께 나누었던 자였습니다.
[요 18:3] 유다가 군대와 및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그러한 유다가 이곳에 찾아왔습니다. 유다가 군대와 및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을 데리고 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비참한 말씀입니다. 누가 저들을 데리고 왔습니까? 요한은 유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를 지금 잡으려고 왔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를 잡으러 온 것입니다. 주님을 잡아 넘겨서 처형하려고 유다가 지금 군대와 하속을 데리고 온 것입니다. 주님이 사랑했던 제자가 주님을 사로 잡는 가장 앞자리에 서있는 장면입니다. 이것은 슬프고도 비극적인 이야기입니다.
본문에서 군대는 성전수비대였습니다. 성전에 수비대가 있었습니다. 성전에 왜 수비대가 필요했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시대에 성전은 로마와 결탁되어 있는 권력의 또 다른 한 근거지였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는데 성전을 지키는 수비대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여기 사용된 ‘군대’라는 말은 헬라어 ‘스피라 (σπεῖρα, spi'-rah)입니다. 이것은 대략 600-1000명 정도로 구성된 로마 군대 단위를 지칭합니다. (특수훈련을 받은 보병으로 구성될 경우는 600명, 보조병으로 구성될 경우는 500명, 또는 1000명 단위로 구성이 된다고 함.) 어떤 학자들은 이때 보내진 사람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최소 200명은 넘었을 것이라고 추론합니다. 예수를 잡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보내진 것입니다.
성전수비대가 진정으로 지켜야 할 자들은 누구입니까? 성전 그 자체이신, 실체 성전이신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그들이 그토록 고대했던 그리스도가 왔는데, 그들은 그리스도를 지켜야 하지 않습니까? 당연히 그들이 지켜야 할 자는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그들은 그리스도를 잡으러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지켜야 할 군대들의 반역입니다. 분명 반역입니다!
여기 그리스도를 잡으러 왔던 자들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하속들을 데리고 등과 홰와 병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이 가증스러운 모습을 보십시오. 등을 들고 홰를 들고 왔습니다. 홰가 무엇입니까? 횃불입니다. 지금은 유월절 기간이었고, 유월절 기간에는 보름달(full moon)이 떠서 밤을 환하게 비춰주는 기간입니다. 휘황찬란한 달 밝은 보름에 밖에 나가보십시오. 너무 잘 보여서 횃불이 없어도 모든 것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횃불을 들고 왔던 것입니다.
헬라에서는 ‘등’은 ‘진리를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헬라 철학자인 디오게네스는 대낮에 등불을 들고 진리를 찾았다고 합니다.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라고 사람들이 물었을 때, 그는 ‘진리를 찾고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등’은 ‘진리를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횃불’은 무엇입니까? 횃불은 매우 혁명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진리를 찾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횃불을 높이 들어 진리의 세계를 널리 알리고 혁명적인 역사를 열어야 할 자들이 지금 그것으로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는 고발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주님을 잡아 죽이기 위해서, 등과 횃불을 들고 왔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구석구석 뒤져서 잡아가려고 손에 등과 횃불을 들고 왔습니다.
또한, 그들은 병기를 들고 왔습니다. 지금 이것은 수색대가 범죄자를 수색하는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아무런 힘도 없고 한 번도 무력을 사용해본 적이 없는 예수님을 잡기 위해 유다와 무리들은 수많은 칼과 몽치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보름달의 빛에 반사되어 칼과 몽치는 더 위협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주님을 위협하려고 그들의 손에 칼이 들려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칼로 주님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자들이었건만, 오히려 그들은 주님을 잡으려고 칼을 들고 왔습니다. 그런데 설령 그들이 주님을 잡아 가려고 한다고 해도, 도대체 왜 군대가 필요하단 말입니까? 하지만 그들은 이런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주님을 찾으러 왔습니다. 그리고 그 맨 앞에는 주께서 사랑하셨던 제자가 앞장서 있었습니다. 이것을 고발하는 요한 안에는 깊은 슬픔이 배어 있었을 것입니다.
[요 18: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주님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셨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깊은 세계가 있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올 것을 아셨지만, 미리 진지를 구축하고 병기로 무장해서 대결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를 피하거나 도망가려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이 말이 매우 충격적인 말입니다. 왜 주님은 그 죽음의 세력 앞에서 피하지 않으셨을까요? 주께서는 이제 남겨진 것은 그 길을 가는 것뿐 임을 아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의 길을 갈 때, 수많은 역경과 고난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는 진정한 용기와 흔들리지 않는 떳떳함과 당당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힘입니다.
주님을 잡으러 온 자들이 등과 홰를 들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왜 등과 홰를 들고 왔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이 숨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석에 숨어있는 주님을 찾으려고 등과 홰를 들고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또한 병기를 들고 왔습니다. 칼(병기)로 위협해서 주님을 나오게 해서 잡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주님을 잡으려고 온 자들 안에 비겁함과 간교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주님은 당당하게 그들에게 나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8:5-6]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가라사대 내로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저희와 함께 섰더라 6 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하실 때에 저희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그들이 나사렛 예수를 찾는다고 말하자, 예수님은 바로 당당하게 “그가 나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앞에 주님을 잡으러 온 자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요한은 이것을 가슴 떨리게 기록했습니다. 여기 주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주님은 너무도 당당했습니다. ‘나다. 너희가 찾는 자가 여기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죽음의 세력 앞에 모습을 숨기지 아니하시고, 다른 길로 가지 않으시고 당당하게 맞서서 하나님의 아들의 위엄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들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주님은 나타나셨습니다. 그 모습에서 그들은 다 엎드려졌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넘쳐나는 주님의 영적인 권위를 볼 수 있고, 그 주님 안에 있는 놀라운 영적인 권위로 말미암아 저들이 다 엎어졌습니다.
본문에서 요한이 이야기하려는 아주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께서 잡히시는 사건을 직접 본 목격자였습니다. 요한은 이 기록을 통해 주께서는 ‘잡히신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힘과 간교한 수색의 작전과 과정 속에서 잡혀서 ‘끌려가신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죄의 모든 것을 담당하시기 위해서 당당히 십자가의 길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속죄양의 길, 고난의 종의 길을 주께서 ‘스스로’ 가셨다는 것을 요한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증거이자 가슴 떨리는 증거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통곡하며 두려워 떠는 자리에서, 주님은 두려워 떨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주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주는 힘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믿음입니다. 주님 안에는 ‘ 이 길을 가게 하신 사연이 있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뜻이 있지 않겠는가’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 절대 믿음이 죽음의 세력을 삼켰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당당했습니다. 도리어 주님을 잡으러 왔던 자들이 엎어졌다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