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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17일차 묵상 말씀>

 

겟세마네의 기도 / 그리스도와의 동행 (II)

마가복음14장32-42절

주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마가는 그들이 감람산 중에서 겟세마네 동산에 이르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 14:32-33] 저희가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나의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았으라 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예수님에게 열 두 제자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은 스승을 팔기 위해 밤에 나갔고, 이제 열 한 명이 남았습니다. 함께 있었던 열 한 명의 제자들 중에서 세 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주께서 겟세마네로 가셨습니다. 공관복음의 마태, 마가, 누가가 모두 이 겟세마네의 기도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의 최후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최후의 기도를 하는 주님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막 14: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여기 예수님께서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셨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을 보면,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 안에 심한 통곡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겟세마네의 기도가 요한복음에는 빠져 있습니다. 요한은 요한복음은 18장에 예수님의 잡히심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렇게 주님이 잡히시기 전에,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시며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셨던 주님의 세계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요한은 이것을 기록하지 않았을까요? 요한의 입장에서 보면, 최후의 만찬에서 떡과 포도주를 나눠주며 이것은 내 살과 피라고 하시며 이미 주께서 수난을 결심하셨는데, 또 다시 심히 놀라시며 슬퍼했던 주님 안에 이런 비참함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주님 안에 고통과 슬픔과 놀람이 있었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었던 것입니다. 결단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님 안에 있는 흔들림과 인간적인 나약함이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미 주님께서 모든 것을 결심하시고 십자가의 길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걸어가신 것으로 요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이것이 제 4복음서인 요한복음 안에 담겨 있는 세계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이 기록될 당시에 사람들은 겟세마네의 기도에 대한 기록을 읽기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이 부분을 잘 읽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면 예수 그리스도의 통곡과 눈물의 기도를 보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고통을 받으셨다는 것을 회상하고 싶지도 않고, 예수님의 제자들 안에 있는 말할 수 없는 깊은 영적 침륜을 다시 보고 싶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가복음’을 통해서 이 부분을 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주님 안에 있었던 깊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깊은 고통의 골짜기 속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보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의 놀람과 슬픔, 눈물과 통곡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으셔야 했던 왕의 수난과 왕의 고통의 눈물과 왕의 놀람과 슬픔을 우리가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막 14: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주님의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정직한 기록입니까? 우리가 신앙의 길을 갈 때, 어떤 이들은 예수 믿으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수 믿으면 어떤 고난도 없고, 항상 부활의 권능만 맛보고 산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그리스도의 길과 다른 길입니까? 부활의 그리스도의 역광선이 있습니다. 부활의 그리스도는 밝은 빛과 같습니다.

그 빛나는 빛에서 비춰보면, 겟세마네의 기도는 가장 깊고도 어두운 골짜기입니다. 가장 어둡고 슬프고 비극적인 장면입니다. 그러나 깊은 골짜기를 아는 자만이 높은 봉우리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부활만 보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광을 찬양하며 봉우리만을 쳐다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부활을 보기 전에 반드시 깊은 고난의 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출애굽기 12장 9절을 보면,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이 양을 먹을 때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먹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한 부분만 먹어서는 안 됩니다. 머리와 정강이, 내장, 즉 지정의의 모든 것을 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상한 사상, 윤리, 도덕적인 교훈들과 가르침들만 좋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우리를 향하신 사랑만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느 한 가지만 취해서 먹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유월절의 어린양을 먹을 때 하나도 남김없이 모든 것을 다 먹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활절을 맞이하기 전에 무엇을 생각해야겠습니까? 영광스러운 봉우리의 이면에 있는, 그 뒷면에 있는 깊은 어둠의 골짜기를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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