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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15일차 묵상 말씀>

 

" 십자가, 죽음의 강을 흔들리지 않고 넘을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모든 것을 맡기는 삶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

 

제목: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본문: 요한복음 13장 31-38절

주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계십니다. 십자가의 길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지금 가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것을 우리가 깊이 있게 보고, 또 보고, 또 보아야 합니다. 깊이 묵상해서 우리 안에 수육(육화)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정죄하지 않고 대속하는 삶과 용서하는 것, 이것이 사랑입니다. 기독교의 사랑은 관념이나 이론의 체계나 아름다운 설명이나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은 그런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본 바, 들은 바, 손으로 만진 바 된 것입니다. 우리 안에 확증되어 열려지고 깨달아진 놀라운 세계입니다.

[요 13:36]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요13:36a)고 질문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질문에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눈물 나는 이야기입니다. “아, 네가 못 알아듣는구나. 그러나 네가 언젠가는 알아들을 거야. 깨달을 날이 있을 거야. 그리고 그 길을 따라오게 될 거야.”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끝까지 베드로를 믿으셨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 안에 여전히 십자가의 의미가 열려지지 않은 베드로로 인해 주님께서 겪으신 깊은 답답한 고통의 세계가 있었습니다.

말씀을 잘 깨닫는다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주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을 마지막에 가르치셨습니까? 십자가의 길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해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베드로의 질문 안에 동일한 문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영적인 시각이 열려지지 않았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질문을 통해 베드로 안에 있는 깊은 영적인 방황을 볼 수 있습니다. 이후에 베드로는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 졸았습니다. 그는 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최후의 만찬 후에 고별의 설교를 통해 주님께서 주시는 깊은 사랑의 권면을 받아들이는 베드로의 모습에서 그것을 미리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가시는 길의 의미를 여전히 몰랐습니다. 주님의 제자라고 했지만, 그 길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과 마음으로 하나 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이 물음 안에 십자가 앞에서 주님을 일시적으로 세 번이나 부인하고 배반하며 떠나갔던 부끄럽고 못난 모습이 이미 들어가 있습니다.

33절은 “이제 십자가의 길이 시작됐는데, 내가 십자가를 진 것처럼 너희도 십자가를 지고 따라 와라. 그리하여 부활의 놀라운 능력을 맛봐라. 내가 너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라. 그것이 너희가 갈 길이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여전히 이 십자가의 길에 주님과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 위에 굳게 서는 것, 그리고 변치 않고 그 길을 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 합니다. 지금은 이 세계를 못 알아들었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깨닫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향해 끝까지 믿음과 소망을 두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야, 내가 가는 곳을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요 13:37-38]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주님은 베드로의 장담을 들으시고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요13:38)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한 신앙의 길이란, 그것이 아무리 결의에 차고 용기 있는 모습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잡혀 가신 후에 대제사장의 뜰에 용감하게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결국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그는 주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가지 못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어떤 길입니까? 천박한 용기, 그리고 인간적인 결의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십자가라는 죽음의 강을 흔들리지 않고 넘을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무엇입니까?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무엇입니까? 정면 돌파해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힘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입니다.

주께서 흔들리지 않고 갈 수 있는 힘, 죽음의 강을 넘어서 부활의 영광을 볼 수 있었던 그 힘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능력에 모든 것을 맡기는 삶, 그것을 우리가 믿음이라고 합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는 무엇으로 질 수 있습니까? 그것은 인간적인 용기가 아닙니다. 베드로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삼각형과 같은 모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호언장담했지만 끝이 매우 작고 초라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간 길을 보십시오. 매우 작고 초라했지만 흔들리지 않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 극점이 요한복음 19장 30절 “다 이루었다”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영광에 이르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영광입니다. 나의 영광이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이자 절대적인 믿음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놀라운 부활의 영광이 열려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이 길을 따라가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소망의 하나님,

십자가의 길은 인간적인 용기와 천박한 믿음으로 갈 수 없는 길임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흔들리지 않으시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과 절대적인 믿음을 보게 하소서. 약하고 흔들리기 쉬운 저희들을 말씀으로 강하게 하옵소서. 사순절 기간 주님의 십자가로 더 가까이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