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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11일차 묵상 말씀>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요한복음13장 18-19절

[요13:18]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시 41:9] 나의 신뢰하는 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9절에 기록된 것처럼, 함께 기쁜 마음으로 떡을 나누었던 친구가 발꿈치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떡을 나누며 함께 식탁에서 교제했던 자가 발꿈치를 들고 간악한 자들의 계획에 동참한 것입니다. 발꿈치를 들었다는 표현이 매우 자극적으로 다가옵니다. 유다가 왜 떡을 나누던 식탁에서 일어나 발꿈치를 들어 분노하는 것입니까? 이것이 주님을 향한 포악한 횡포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입니까? “함께 떡을 나누던 자가 그 친구가 일어나 화를 냄은 어찜이뇨? 네가 화를 냄은 어찜이뇨?”라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주님 안에 “나와 함께 떡을 떼는 내 친구가 일어나서 어두움으로 나가는구나.”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밤에 자신을 떠나서 멀리 사라질 유다를 보고 계신 것입니다. 유다 안에 주님을 향한 잘못된 분노, 울분이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다 아시고 그를 돌이키기 위해서 권면하고 있습니다.

시편 41편 한편의 시는 너무나 깊은 세계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시편 41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삶을 통해서 경험했던 것을 기록한 시 중의 하나입니다. 가장 비극적인 장면을 그려놓은 시입니다. 그것을 지금 새로운 다윗, 새로운 왕이신 예수님께서 읽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말하고 계십니다. 우리 안에 이런 유다와 같은 마음 없습니까? 주님께서 떼어 주시는 사랑의 떡을 먹다가 발꿈치를 드는 일은 없습니까? 그런 마음이 들었던 적은 없었습니까? 이 유다는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유다에게 권면했겠습니까? 그러나 유다는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사랑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그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은 자입니까? 주님께서 가지신 모든 것들을 그에게 맡기셨습니다. 돈궤를 맡기시며 큰 사랑과 믿음을 주었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왜 유다가 발뒤꿈치를 들게 된 것입니까? 주님 안에 유다를 향해 “네가 나의 친구가 아니냐? 어찌하여 네가 발꿈치를 드느냐? 네가 어찌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느냐? 말할 수 없는 횡포를 행하느냐?”라는 고통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18-19절의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제자들이 유다의 마음을 알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알았더라면 전혀 다른 국면이 열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유다를 돌이키기 위해서 더 큰 사랑과 관심을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들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공동체안에서 형제자매들과 살 때, 영적으로 민감해야 합니다. 서로의 영혼 깊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은 유다의 깊은 세계를 알지 못했습니다. 유다가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어떤 마음으로 나갔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제자들이 얼마나 깊은 영적 침륜에 빠져 있었는지,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비극의 상황을 볼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 한 분 이셨습니다. 유다 안에 일어나고 있는 심각한 문제와,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을 생각할 때, 이것이 주님께 너무나 힘들고, 어떤 것보다도 쓰라린 십자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모든 고통의 십자가를 홀로 지고 가신 것입니다.

 

[적용 질문] 유다는 예수님의 큰 사랑을 받았지만 그 사랑을 다 잃어버리고 발꿈치를 든 것처럼 우리 안에 그 사랑을 배반하고 유린한 적은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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