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SCROLL TO TOP

 

e_ac4Ud018svc1ol0z0o5n06ci_tay893.jpg

 

<사순절 9일차 묵상 말씀>

 

베드로와 유다의 대비: 중생 체험

요한복음 13장

요한복음 13: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베드로는 회개하고 돌아왔고 유다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차이를 낳은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목욕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 입니다. 중생을 했느냐 하지 못했느냐의 차이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베드로는 절대 주께서 자신을 씻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가 너를 씻기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시자 갑자기 자신의 몸도 씻겨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향해 ‘이미 목욕을 한 자는 다시 목욕할 필요가 없고 발만 씻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목욕을 한 자였습니다. 주님의 놀라운 진리와 사랑의 능력으로 목욕을 한 자였습니다. 그분으로 인해 근본적으로 죽고 다시 산 자였습니다. 중생의 체험이 있었던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하고 배반했지만, 주님의 그 사랑을 기억하고 결국 다시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반한 것은 큰 죄였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수제자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베드로의 모습을 통해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죄를 지었을지라도 그후에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도 베드로처럼 수많은 약함과 허물이 있습니다. 주님의 놀라운 보혈의 사랑으로 목욕함으로 죄를 씻고 구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죄를 저지르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한 사람은 돌아와서 회개했고 다른 사람은 자살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와 유다의 차이였습니다. 자살했다는 것은 자기를 포기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유다는 자기가 돌아올 길을 완전히 막아버리고 말았습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버렸습니다.

물론, 주님을 배신한 것은 심각한 죄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돌아왔고 한 사람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왜 이러한 차이가 생기게 된 것입니까? 베드로는 주님의 사랑을 알았지만, 유다는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용서 받을 수 없을 것 같은 큰 죄를 범했다 할지라도, 주께서 진정으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회개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죄인까지도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죄인을 다시 보고 싶지 않을 원수처럼 대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주님 안에 있는 깊은 마음입니다.

베드로는 이 주님의 사랑을 영접했지만, 유다는 이 사랑을 영접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유다는 오히려 주님과 함께 있었지만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아니라, 자신의 행위와 의로움을 따라서 살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행한 너무나 큰 죄를 생각할 때 다시 주님께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은 자신을 짓누르는 죄의 무게로 인해서 자살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어떤 자였습니까? 베드로는 이미 목욕한 자였습니다. 중생한 자였습니다. 주님의 사랑의 깊은 세계를 알고 주의 사랑으로 목욕함으로 죄로부터 깨끗해진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주님과 새로운 관계성을 맺고 산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죄가 모두 씻겨졌고,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정죄함이 없으며(롬8:1), 어떤 것으로도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베드로는 안 것입니다(롬8:31-39). 이것이 바로 중생 체험입니다. 우리 안에 이러한 분명한 중생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체험하고 깨닫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순절말씀 #사순절큐티#기독교 #그리스도 #고난 #부활 #복음 #큐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