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7일차 묵상 말씀
제목: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본문: 요한복음 13장 2-11절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요한은 매우 참혹한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의 자리에 원수가 함께 있었습니다. 원수가 함께 주님과 만찬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끝까지, 최후의 사랑을 주심으로 그를 돌이키기를 원하셨습니다. 비극의 한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음에도, 사랑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위기에 처하거나 불안이 닥쳐오게 될 때, 자신의 사정에 갇히기 쉽습니다. 더 나아가 다른 이를 돌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때가 이른 것을 아시고, 주께서는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요한은 기록했습니다.
마귀가 시몬의 아들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습니다. 주님과 제자를 갈라놓는 일, 이것이 마귀가 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주님의 제자 중에서 골라서, 그를 통해서 이 모반, 반란, 배반을 계획하는 것보다 더 성공적인 것은 없습니다. 마귀가 노리고 꾀하는 계획 중에서 이것보다 더 사악한 것이 없습니다. 믿는 자들이 항상 조심해야 할 부분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과 가까이 있는 자들이 항상 경계해야 될 문제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나타나면 날수록, 주님의 사랑의 세계 속에 불신과 미움과 배반의 씨앗을 마귀가 뿌리려고 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정확하게 알고 살아야 합니다. 마귀가 유다에게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유다가 감히 주님을 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이 무서운 것입니다. 요한은 이것은 도저히 주님의 제자가 생각할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옳은 기록입니까?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옳은 세계를 알려주고 있습니까? 생각할 수 없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이런 잘못된 생각이 없습니까? 마귀가 뿌려놓은 잘못된 생각을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을 점검해야 할 기간이 바로 사순절 기간입니다.
여기 주께서는 제자들을, 특히 유다를 끝까지 붙드셨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최후의 만찬의 자리에서 주님은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내어버려진 자가 되었습니다. 내어버려짐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주께서는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먼저 거부하고 유린하고 짓밟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내어버려지는 것입니다. 요한은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어떻게든 끝까지 붙들려고 하셨던 주님의 사랑을 요한은 그렸습니다. 요한은 이 사랑의 놀라운 세계를 놓치지 않고 그리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원수가 있을 때 그 원수를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주께서 보여주셨던 것같이 끝까지 사랑하십시오. 배반자가 우리의 식탁에 함께 있으면서 떡을 나눈다 할지라도, 주께서 보여주셨던 것과 같이 그를 끝까지 사랑으로 붙드십시오. 주님을 팔 자가 만찬의 자리에 들어와 있는 너무나 심각한 장면에서도, 주님은 그를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매우 짧게 기록되어 있지만, 묵상하면 할수록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 세계인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13:14)고 하셨습니다. 주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긴 것처럼 서로의 발을 씻기는 자들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끝까지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절까지 40일의 기간을 우리가 가고 있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던, 우리를 붙드셨던 그 깊고도 깊은 세계를 묵상해야 합니다. 주님의 삶이 우리의 죄를 찌르고, 우리의 무정하고 무자비한 삶에 도전이 되어야겠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고난을 앞두고 우리가 다른 이를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너무나 처절한 죽음입니다. 누구도 가고 싶지 않은 비참한 길이 주님 앞에 놓여 있습니다. 짙은 어둠 속으로, 고난과 형극의 자리로 끌려가는 장면입니다. 요한은 사랑의 관점에서 십자가를 해석했지만, 실제로 십자가가 어떤 것인지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장 참혹한 죽음입니다. 그것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도 주님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의 발을 씻기시고 수건으로 그들의 발을 닦으셨습니다. 사랑이라는 하나의 메시지를 매우 강렬하고 분명하게 제자들에게 전해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 마음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만찬에 들어와 있는 자들이여, 13장을 깊이 읽어보십시오. 그리고 30절을 오버랩 시켜서 생각해보십시오. 30절에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던 유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를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또한 유다를 돌이키지 못하고,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지 못하고 다투기만 하던 제자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유다를 돌려놓으시려 끝까지 붙드시고 끝까지 사랑하셨던 마지막 권면, 최후의 권면의 자리가 최후의 만찬의 자리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40일의 기간 동안 우리가 사순절 특별 메시지를 깊이 묵상하면서 주님의 사랑과 그 삶이 우리에게 강렬한 메시지로 임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그 사랑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고 죄에서 돌이키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비참한 십자가의 죽음의 자리로 내모는 자들이 아니라, 참된 사랑을 돌려드리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형제들에게 진정한 사랑, 진정한 섬김을 베풀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미워하는 자들, 원수와 같은 자들이 있습니까? 주께서 보여주셨던 것같이,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고 했던 그 깊고도 깊은 사랑의 진정한 세계를 드러내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닮아 그 사랑을 드러내며, 진정한 부활에 이르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