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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다의 배반(2)

본문: 마태복음26-27장

[마 26:6-9]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그 제자 안에 배반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비극을 보십시오. 이 충격적인 사실을 보십시오. 그가 대제사장에게 가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마 26:15).” 이것은 매우 슬프고 비극적인 이야기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께서 그토록 사랑했던 제자가 대제사장에게 가서 “내가 그를 팔 테니 얼마나 주려느냐?”고 했습니다.

왜 그가 예수님을 팔았을까요? 왜 이렇게 끔찍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을까요? 마태는 이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서, 그리고 모든 복음서의 기자들은 이 사건의 전개에 있어서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이야기와 유다가 예수님을 판 사건을 연결시켜 놓았습니다. 이 시대에 여자는 재산의 목록에 불과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이 여인을 정말 미천하고 죄 많은 여인이라고 기록해 놓았습니다(눅7:37). 그런데 이 미천한 여인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까이 있는 제자는 그 사랑을 알지 못했고, 오히려 먼 발치에 있었던 한 여자가 그 사랑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온 생명을 바쳐서 증거하려 하셨던 하나님의 자비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바로 어리석음입니다. 십자가는 어떤 것입니까? 어리석음입니다.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어리석음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매우 어리석은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부를 해서 똑똑한 사람일수록 이 말씀이 더 이상하게 들립니다. 이상할 뿐만 아니라 불공평합니다. 마태복음 20장을 보면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있습니다. 아침부터 종일토록 수고한 자와 나중에 온 자에게 동일한 품삯을 줍니다. 이것이 은총이고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자비를 보면서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음과 불공평, 그런데 사랑할수록 이렇게 됩니다. 사랑하면 할수록 어리석어집니다. 사랑하면 할수록 이유가 사라집니다.

사순절의 고난 기간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고난을 묵상해야 합니다. 특히 욥기를 깊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사단이 와서 욥을 참소합니다. “하나님, 그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없애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을 버릴 것입니다.” 이것이 사단의 참소의 핵심입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으셨을지 모릅니다. 사단의 기가 막힌 생각을 처음 들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무조건적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서 일일이 따진다면 우리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안에 사랑스러운 모습이 많겠습니까 미운 모습이 많겠습니까? 이사야서 1장 18절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변론하자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변론하신다면 우리는 살아남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따지지 아니하시고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들려지는 이 음성 속에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라 이 사랑의 길을 갈 때, 우리를 파고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적인 판단입니다.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보다 보면,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헌신하는 우리의 삶이 허비 같아 보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어리석은 삶을 사는 것 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적인 관점으로 모든 것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주님으로부터 돌아서게 하는 유혹이 어디에서부터 옵니까? 그것은 우리가 진정한 사랑은 알지 못하고 세상적으로만 똑똑해지려고 할 때 오는 것입니다. 언제 우리가 주님을 오해하고 배반했던 유다의 자리에 서게 됩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을 오해할 때입니다. 그 사랑은 분명히 낭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룩한 낭비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유다와 같은 주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합니다.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식의 나무 열매를 따먹지 말고 오직 온전한 사랑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유다 같이 배반하지 아니하고, 주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의 능력을 따라서, 제자로서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기도]

조건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

사순절 기간 주님의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을 진정 알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낮아짐과 비움과 희생의 사랑을 알지 못한 유다는 결국 주님을 배반했습니다. 우리가 유다와 같이 주님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길 원합니다, 주님의 허비와 같은 그 사랑이 있었기에 자신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닫길 원합니다. 믿음이 사라지면 지식이 우리를 지배하게 됩니다. 세상의 잣대로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판단하는 자가 되지 않길 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므로 유다와 같이 배반하지 아니하고 사랑에 응답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