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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 교회가 직면한 또 하나의 도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대주의적인 영향을 미친 거짓 교사들로 인해 교회가 흔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급히 편지를 써서 먼저 보냈습니다. 이 세계가 사랑입니다. 사도의 편지 속에는 그 말마다 사랑이 베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골 2:1).

 

골로새 교회와 함께 세 개의 교회가 풍전등화(風前燈火)처럼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골로새서는 바울이 그 교회들을 붙들어 주기 위해 쓴 편지입니다.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우리의 존재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5). 바울은 우리가 전파해야 할 두 가지를 말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입니다. 선교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위기에 처한 골로새 교회를 위해 힘써 간절한 마음으로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며 진리의 깊은 세계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골 2:2a).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해 골로새 교우들이 위안을 받으며, 그 다음에는 사랑 안에서 연합하고,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를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풍요로워지고 부요함에 이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부요’라는 말을 주목하십시오. 예수를 잘 아는 자는 부요함에 이르게 된다고 바울은 강조합니다. 부요함에 이른다는 것은 모자람 없이 풍요로운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거짓된 이론을 주장하는 자들에 대한 바울의 답변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모든 것을 가졌고 깨달았다고 주장할지라도, 여전히 부족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십니다(골 2:9). 저는 이 구절을 항상 좋아합니다. 주님 안에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게 있습니다. 찰랑거리고 넘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온전한 세계입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도 충만함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알게 되면 “주는 나의 만족이라.”는 고백이 터져 나옵니다. 헬라인들은 인간을 무엇인가를 담는 그릇으로 이해했습니다. 인간은 무언가를 담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온전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우리 영혼의 만족과 부요는 주님 안에 있습니다. “주는 나의 만족이시라.” 이것은 영지주의자들과 거짓 철학, 속임수와 같은 세속의 공격 앞에서 바울의 간결한 답변입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골 2:3).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혜는 결코 부족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많이 읽으십시오. 그 안에 모든 해답이 다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 “너희는 어디서 무엇을 찾고 있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거짓된 철학과 속임수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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