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를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본문: 베드로후서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새 법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차원의 법입니다. 옛 법과 새 법의 차이는 차원성(Dimension)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잘 이해해야 할 것은 옛 법을 없앤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폐기론자가 아닙니다. 율법이 폐기된 것이 아니고, 율법은 엄연히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은 그대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정의를 위해서 율법은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새로운 법을 인간에게 주셨습니까?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살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복음은 가장 인간다운 법입니다. 교회는 법을 통해서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분이었더라면, 벌써 사람을 다 죽이지 않았겠습니까? 사람을 심판해서 다 없애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치 않기 위해서 참고 또 참으면서 인간을 기다려 오셨던 것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하나님은 가장 자유로운 그 세상을 위해서 우리를 기다려 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때문에 인간에게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인간이 왜 존재합니까? 인간은 사랑하려고 또 사랑을 받으려고 태어난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그 사랑의 법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인간을 가장 인간적으로 살 수 있게 해주는 법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인간의 심령에 가장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법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원수를 미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도 돌려대라.(마5:39)”고 하셨습니다. 상대의 오른 뺨을 때리려면 손등으로 쳐야 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손등으로 사람의 뺨을 치면, 엄청 모욕적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모욕을 받을지라도 그것을 참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폭력을 참는다는 것이 쉽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세상의 평화는 어떤 평화입니까? 힘입니다. 억제력(Deterrence)입니다. 이쪽에서 치면 다시 저쪽에서도 쳐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치학의 기본입니다. 네가 돌을 들면 나도 돌을 들고, 네가 창을 들면 나도 창을 들고, 네가 칼을 들면 내가 칼을 들고, 네가 총을 들면 내가 총을 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의 평화입니다.
그런 가운데 새 법이 이렇게 나온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새로운 차원의 진리를 볼 수 없는 자가 많습니다. 천국에 누가 주인인가 할 때, 섬기는 자가 주인이라는 진리가 안 보입니다. 나라가 현존하는 나라와 다르니까, 안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의 주인에게는 그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 주인이 누구입니까? 바로 어린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참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치 않기 위해서
끝까지 참고 오랜 시간 인간을 기다려오신 그 깊은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 때문에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자유로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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