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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본문; 요14:4-6

[요14:4-6]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부분은 예수님의 가장 위대한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인간은 다 행복해지기 바라고 아름답게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진선미를 추구합니다. 참되게 살기를 바라고 아름답게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아름답고 진실한 소망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니까, 인간 안에 고민과 방황과 고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해답이 있습니다. 그 해답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내가 그 길이요 진리다.” 여기 "길과 진리"가 나왔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부터 그 시작을 진리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형이상학적인 것일 수 있고 이론적인 철학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변하는 세계 속에 변치 않는 진리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그것을 찾기 위해 고민했습니다. 어떤 이는 그것을 찾기 위해 대낮에도 등불을 켜고 그 진리를 찾기 원했다고 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된 진리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화신이라는 말입니다. 이 진리를 사랑의 진리라는 관점에서 보면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관념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랑이 종이조각 위에 쓰여진 “사랑하라”는 당위적인 말이 되면 안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8)라고 했는데, 그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입니까? 그 사랑을 예수님을 통해서 보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사랑을 해야 하는지, 그 사랑이 무엇인지를 예수님께서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마치 이런 예와 같습니다. 문 밖에서 누군가 노크를 하면, 누군가가 밖에 와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왔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철학의 한계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지 알 수는 있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요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사랑의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 사도가 한가지 분명하게 가르치려고 했던 것은 “로고스이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진리입니다. 이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그리스도는 다윗과 같은 왕이다, 마가복음은 전능한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이다, 누가복음은 온 인류를 위한 인자(Son of man)이신 그리스도이다 라고 증언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리요"(요 14: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 그 자체가 진리였던 것입니다. 자기 낮추심과 자기 비움, 죽기까지 복종하신 삶. 그 삶을 캐노시스(Kenosis)라고 합니다. 그 삶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보게 된 것입니다.

#매일큐티 #성경 #요한복음 #오직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