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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행1: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이 말속에는 뭐가 있냐면, 지금 안식일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는 말을 왜 여기에 썼을까요? 이 시대 글을 쓰는 방식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이 말안에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2000큐빗(약900m~1Km)을 벗어나면 안된다는 안식에 대한 규칙이 있었습니다. 율법에는 십계명이 있고 그 아래에 시행수칙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교법사가 안식일을 범하지 말라고 하면 어느 정도로 범하지 말아야 하는 가하고 물을 때, 자기들 안에 세워진 시행수칙이 있었습니다. 그게 대게 2000큐빗입니다. 제자들은 이런 엄격한 생활의 기준을 갖고 살았던 것입니다.

<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눈 >

초대교회(예루살렘교회)는 정말 훌륭한 면이 있었습니다. 누가가 이 글을 쓸 때 직접경험과 간접경험이 있는데, 이것은 지금 간접경험입니다. 누가는 이방인이고 바울의 교회에 속해 있던 사람인데, 예루살렘 교회에 와서 보고 “너무 고리타분하구나. 우리 바울의 교회가 최고지.” 이렇게 욕한 게 아닙니다. 사도들 안에 너무 훌륭한 것이 있습니다.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눈이야말로 정말 훌륭한 신앙입니다. 형제들의 좋은 점을 볼 줄 아는 눈입니다.

자유의 복음을 알고 율법으로부터 해방된 자들이 왜 이렇게 사는가 할 수도 있었지만, 누가의 눈에는 이런 게 너무 인상 깊게 남아져 있었나 봅니다. 의사이므로 이것을 꼼꼼하게 적어놓았습니다. 이런 부분이 정말 감동적인 부분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얻는 교훈이란 무엇일까요? 누가는 ‘이렇게 고루하고 한심하구나. 어떻게 이렇게 믿고 있느냐?’한 것이 아니라, ‘이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멋있는 교회이구나. 제사장적 전통을 이어가려는 자들이므로 그 안에 정말 철저한 것이 있구나. 멋있다!’라고 보았다는 것입니다. 대게 보수와 진보가 대화를 나눌 때, 서로의 좋은 면을 보지 못하므로 서로 싸우고 갈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안에는 서로를 용납하고 이해하는 아름다운 면이 있었습니다. 행15장의 예루살렘 회의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서로를 받아들이고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귀한 것과 그 안에 흐르는 깊은 뜻을 발견하려고 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 자유하였으나 >

우리가 이 시대를 볼 때, 자칫하면 성령의 자유를 말하고 그리스도 안의 무한한 자유를 맛본 자들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지 않나 하기 쉽습니다. 시시하고 낡아빠진 규율을 우리가 지킬 이유가 뭔가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 고전9:19~20 >을 봅시다.

* [고전9:19-20]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우리가 이러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 입니다.

[사도행전3장]에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철저하게 성전기도를 드렸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기도를 했었는데, 하루 3번(9시, 12시, 3시) 성전에 나가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어떤 사람보다도 더 신앙적인 규율들을 엄격히 지키고 신앙의 기준을 높이 세워 나가려 했던 사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전지기가 시간을 안 지킬지라도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에 들어가 그것을 지켰을 것입니다.

사실, 사도들은 유대교적인 계율들을 지켜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유대교와 예수의 제자들과는 어떤 감정적 관계를 갖고 있었습니까. 유대인들은 제자들이 그토록 사랑했던 스승을 죽인 장본인들이었습니다. 원수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까짓 것 송두리째 집어 던져도 될 법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 이런 자세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예루살렘 교회의 제자들안에는 이런 굉장히 훌륭한 모습이 있었습니다. 두 기둥이었던 예루살렘 교회와 바울의 교회를 비교해보면, 바울의 교회가 좀 더 시원하고 덜 답답한 모습이 가지고 있었지만 베드로의 교회는 제사장적 교회의 풍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앙의 지켜야 할 규율을 절대시하고 유대인들이 믿는 것보다 더 철저하게 붙들고 가려고 했던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굉장히 훌륭한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