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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본문: 로마서 8:31

[로마서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라고 말씀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이 일은 구원에 관한 일입니다. 바울은 이 위대한 구원의 과정을 5개의 단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5중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5개의 스텝을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서 5중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미리 아신 자를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다.” 예지, 예정, 소명, 칭의, 영화의 단계입니다. 이 단계적인 축복은 서로 끊어질 수 없는 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주의 은혜라. 나의 공로로 되어진 것이 전혀 없도다.”라는 찬양처럼, 오늘의 내가 이 곳에 서 있는 것은 전부 다 주의 은혜입니다. 주께서 나를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그리고 나를 부르셔서 나를 의롭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그 놀라우신 은혜와 그 사랑 안에 내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간단히 줄여서 말하면 ‘예지예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풍성한 은혜 안에 내가 나 된 것이고 내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누가 이 은혜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 라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어떻게 이 놀라운 은혜를 누가 지울 수 있겠느냐? 누가 이 놀라운 말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누가 이 놀라운 은혜를 감히 무효화 시키겠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누가 그것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누가 이 은혜를 변경시키거나 이 은혜에 대하여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고 무효화 시킬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예지예정을 통해서, 그 절대적인 사랑의 능력을 통해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놀라운 은혜를 통해서 내가 확정된 것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약화시키거나 무효화시키거나 제거할 그 어떤 힘도 없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31절), 누가 능히 고발하리요(33절)” 바울 사도는 5중 축복에 더해서 2개의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이고, 또 하나는 “누가 능히 고발하리요” 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에 관한 거대한 그림이 이 7개로 마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자꾸 더해지면서 우리의 구원은 흔들릴 수 없고 끊어질 수 없고 변개될 수 없고 지워질 수 없는 것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우리를 고발하리요.” 어떤 적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힘과 어떤 세력이 이 구원의 능력과 놀라우신 은혜를 대적할 것이며, 하나님 하신 이 일에 대하여 다른 말로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할 수 없다는 확신을 사도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 62: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 [시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 [시 28: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우리가 아름다운 시편의 고백들을 봅니다. 왜 이런 고백을 우리가 할 수 있습니까? 주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의의 옷을 입히시고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며 주님의 전권의 손 안에 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우리 안에 있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사와 특권에 대해 도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 어떤 힘도 대적할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의심하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55장 8-9절을 보십시오. [사 55:8-9]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다르고 하나님의 길과 우리의 길이 다르다는 겁니다. 그의 생각과 길은 우리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우리의 생각대로 함부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어디서 위기가 닥칩니까? 이 절대 예지예정이 흔들릴 때 신앙은 위기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내 죄를 사하셨을까? 나 같은 사람을 왜 부르셨지? 나 같은 사람도 구원을 받은 것인가?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아니하셨을까? 아직도 나를 사랑하고 계실까?’ 하고 의심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신앙은 무엇입니까? 확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짓고, 또 죄짓기 쉬운 죄악된 세계에서 살고 있는 이유로, 우리 영혼이 늘 불안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 안에 있는 것을 빼앗긴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밀려오는 것입니다. 이게 사도가 거듭 강조해서, 예지 예정을 말하고, 5중 축복을 강조하고, 나아가 7겹으로 겹쳐진 은혜를 끊임없이 선언하는 이유입니다. 사도가 확신 있게 말하는 것은 성도 안에 임한 구원의 확신과 성도의 견인(堅忍)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놀라운 은혜는 변개될 수 없고 빼앗길 수 없는 것이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예지예정의 신앙 위에 서 있을 때, 이 구원의 확신 위에 서 있을 때, 우린 진정한 평화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의 평화는 주께서 베푸신 은혜로 말미암아 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 깨리요. 주는 나의 빛이요. 나의 방패시요 산성이시니 말입니다. 그 사랑의 능력 안에 내가 이미 건짐 받았고 그 안에 내가 거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유명한 시를 보겠습니다. [시 23:1-2]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아름다운 다윗의 시입니다. 하나님에게 맡겨진 자의 노래입니다. 그 안에 있는 평화를 우리가 느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놀라우신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자들 안에는 놀라운 평화가 있음을 우리가 이 사도의 선언 속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선언하고 있습니다. “누가 내 안에 있는 평화를 흔들 수 있느냐.” 사도는 내 안에 임한 놀라운 은혜를 누가 부인할 수 있겠고 대적할 수 있겠냐고 외치고 있습니다. 아멘

  • 은혜단비 2023.08.03 08:24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는 귀한 말씀입니다. 저에게 임한 구원은 절대 부정하거나 변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굳게 붙들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