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텔레비전 대신 책장을 놓는다
기원전 70년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포위돼 함락되기 직전. 예루살렘의 지도적 위치에 있던 랍비 아끼바는 함락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하고는, 밤의 어둠을 틈타 성을 빠져 나왔다. 몇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천신만고 끝에 로마군 사령관 베스베잔을 찾아간 아끼바는 한 가지 청을 들어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로마군이 성 안으로 침략하면 방화나 약탈을 자행할 터인데, 모든 것을 다 파괴해도 좋지만, 학교만은 보존해 주시오." 궁전이나 사원보다도, 유대민족의 미래가 걸린 교육만은 계속돼야 한다는 염원이었다. 로마군 사령관은 "그 정도의 청이라면 들어주겠다"고 약속했고, 성을 함락한 뒤 조그마한 학교 건물 하나만은 보존시켰다.
유대인 가정의 거실에는 대부분 텔레비전이 없다. 그 대신 책이 가득 들어찬 책장, 앉아서 책을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책상과 의자가 있다. 텔레비전이 있더라도 어린이 프로그램이 끝나고 어른들이 시청하는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텔레비전 코드를 빼버린다. 자녀에게는 처음부터 어린이 프로그램만 보기로 약속하고 훈련을 시킨다. 가족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식사시간에 텔레비전을 켜는 일도 상상하기 어렵다. 자녀는 부모를 보고 그대로 따라할 것이기 때문에 부모가 먼저 실천한다.
유대인들이 거실에 텔레비전을 놓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시각을 통해 전달되는 강렬한 세속문화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어린 나이에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보지 말아야 하며, 그래야 학업에 정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유대인 엄마는 《타임》이나 《뉴스위크》 같은 시사 잡지조차도 노출이 심한 여배우가 등장하는 사진이나 선정적인 광고 등 은 그 페이지를 뜯어낸 후 집에 둔다.
두 번째 이유는 영상매체의 강한 중독성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어려서부터 영상물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갈수록 더욱 강한 자극과 강렬한 이미지를 원하게 된다. 작은 활자가 빽빽이 들어찬 책을 멀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까다롭고 복잡한 내용의 책을 읽어야 하는데, 독서를 싫어하니 학습과정 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다. 1996년 노벨상 수상자인 호주 멜버른 대학 피터 도허티 교수는 "독서가 노벨상 수상의 원동력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할머니가 책을 많이 읽어주었고 여섯 살 무렵부터 혼자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독서의 이유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다. 텔레비전은 독서에 비해 깊이 있는 내용을 전해주지 못한다(2006년 고려 대 강연)"고 지적했다. 영상물의 중독성에 대한 우려는 학교교육까지 이어져서, 최첨단 프로젝터로 각종 동영상을 보여주는 것을 선진교육으로 여기는 한국과 달리, 유대인 학교는 텔레비전을 활용한 영상 교육에 매우 신중하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없앴을 때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 미국 이스트 워싱턴 대학의 바버라 브룩 박사는 385가구를 대상으로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가정의 변화를 조사했다. 텔레비전을 없앤 집 자녀의 51퍼센트가 전 과목에서 A를 받았는데, 부모들 중 83퍼센트가 텔레비전을 없앤 효과'라고 밝혔다. 텔레비전을 안 보게 되었을 때 대신 하는 활동으로는 독서가 1위였고(놀이, 취미 생활, 운동 등 이 뒤를 이었다), 조사 대상자의 85퍼센트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렸다(17퍼센트는 하루 2시간 이상, 37퍼센트는 하루 1~2시간, 31퍼센트는 30분~1시간).
《평생성적, 초등 4학년에 결정된다)의 저자 김명옥 씨는 지금은 대학생인 큰 아들이 만화영화에 한창 빠져들던 네 살 무렵, 입을 헤 벌리고 몇 시간씩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텔레비전을 없애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막상 텔레비전을 완전히 끊기까지는 2년이 걸렸다. 그동안 시청 시간을 줄인 만큼 책을 읽히기 시작했고 점차 독서량을 늘려갔다. 큰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5천 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 김씨는 아이들이 손만 뻗으면 책을 집을 수 있도록 사방 벽에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엄선한 수백 권의 책을 배치했다. 김씨 가족은 신문과 잡지, 책을 통해 세상 소식을 접한다.
"현대인들이 텔레비전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 텔레비전이 없으면 세상과의 소통이 안 된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는 게 매우 안타까워요." 한국 사람의 하루 평균 텔레비전 시청시간은 2시간을 넘는다. 평생으로 치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10년이라는 시간이 덤으로 주어지는 셈이다. 그 시간을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며 놀이를 하는 데 쓴다면 우리 인생은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다. 유대인 부모는 그 시간에 자녀들과 《토라》와 《탈무드》를 읽고 토론한다. 어려서부터 독서와 토론을 통해 논리력을 키운다. 유대인이 미국의 학계와 법조계, 언론계를 석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대인은 과학자나 예술가조차도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많다. 유대인들이 왜 가정과 학교에서 텔레비전을 치우고, 독서와 토론을 많이 하는지 곰곰이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도서 "부모라면 유대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