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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본문: 로마서 5:1-2절

[로마서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이것이 칭의로 인한 첫번째 혜택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간의 관계에서 최초로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시대는 다른 말로 하면 평화의 시대입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진노 아래 있던 죄인이었는데, 현재에는 자유케 되어서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We have been justified).” 여기 시제는 과거 완료형입니다. 의롭다함을 받은 것은 ‘이미’입니다. 이는 완료가 된 실제(reality)입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여기 시제는 ‘현재(present)’입니다. 비단 미래가 아닌 현재에 우리가 누리는 권세입니다. 의롭다 함을 받은 결과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권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화평을 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주는 평화란 무엇입니까?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리스도가 주는 평화와 세상의 평화는 어떻게 다릅니까? 세상의 평화는 힘으로 통제되고 지배되는 억제력(deterrent)의 평화입니다. 이쪽에서 큰 무기를 가지면 저쪽에서도 큰 무기를 갖으므로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을 가지므로 유지되는 세상의 평화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평화는 영혼의 깊은 절망과 신음에서 자유케 된 평화입니다.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곤궁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자가 누리는 평화입니다.

여기 다시 “믿음”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는 이 믿음은 무엇입니까? 강한 믿음, 약한 믿음, 그런 믿음입니까? 아닙니다. 사랑을 말할 때, 헬라인들은 아가페(agape, 이타적 사랑), 에로스(eros, 쾌락을 추구하는 사랑), 필리아(philia, 친구와의 우정), 스토르게(storge,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필라우티아(philautia, 자기에 대한 사랑) 등으로 구분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랑이 다 같은 사랑이 아닌 것처럼, 믿음도 다 같은 믿음이 아닙니다. 바울은 믿음이 무엇인지를 로마서 1, 2, 3, 4장에 써놓은 것입니다. 믿음은 은혜를 수용하는 채널이요통로입니다. 믿음은 은혜를 받는 길인데, 꺼꾸로 말하면 은혜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믿음은 은혜로 들어가는 길을 찾게 해줍니다. 이것이 믿음과 은혜의 신비로운 세계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인간이 하나님과 견고한 관계를 유지하게 해줍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은혜는 무엇입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은혜는 누구의 행위입니까? 전적으로 주님께서 하신 행위입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줄곧 설명하는 은혜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입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믿음은 주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 그 은혜를 내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은혜를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불신앙의 신비(Mystery of Unfaith)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못 믿을까? 참 신비롭도다’ 라는 말입니다. 주의 선행적 은총(Prevenient Grac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안 들리는데 내게는 들려지게 되었고, 다른 사람은 안 믿어지는 데 나는 믿어지게 되었으니 이것이 주의 은혜가 아니겠는가 라는 말입니다.

[로마서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그러므로 칭의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는 감격이 있습니다. 그 감격은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영혼의 평화가 임했습니다. “즐거워하여라. Rejoice.” 로마서 5장에서 바울은 이것을 강조합니다. 구원은 깜짝 놀랄만한 주님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받고 기뻐하지 않는 자는 얼마나 왜곡된 자입니까? 이미 전쟁은끝났습니다. 우리는 더이상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질 이유가 없고 전투를 벌일 이유도 없고 적에게 쫓길 이유도 없습니다. 이미 평화가 왔습니다. ‘평화를 누리자! 즐거워하자!” 이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로 도망가다가 홍해 바다를 만났습니다. 그 때에 모세가 믿음으로 홍해 바다를 갈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을 건넜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던 애굽의 병사들은 모두 수장되었습니다. 그래서 홍해 바다를 건넌후에 미리암(Miriam)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구원을 받은 자는 살아났기 때문에 기쁨과 감사의 찬양을 부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홍해 바다를 건넌 자에게는 애굽의 병거가 더이상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홍해 바다에 다 수장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애굽의 병거가 따라온다고 생각하고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병적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이 우리가 이미 의인이 되었는데, 여전히 자신이 죄인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보면, 죄책감에 사로잡혀서 고통스러워 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 죄의 빚을 다 청산하셨습니다. 이것이 칭의(Justification)입니다. 칭의는 법정의 용어(forensic term)로서,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고 법적으로 이미 선포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 이상 과거의 죄의 문제에 대해 죄책감과 공포를 가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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