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1일차 묵상
제목: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본문: 누가복음 22:24~ 27
누가복음 22:24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5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묵상]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포도주를 주시며,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8).”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떡을 떼어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마26:26).”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나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앞으로도 이를 행하여 포도주를 마시고 떡을 떼면서 항상 주님의 희생에 대해서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눅22:19). 최후의 만찬은 제자들을 위해서 자신을 스스로 비우신 위대한 사랑의 행위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깊은 뜻을 마지막 만찬에서 떡을 떼어 주시면서까지 가르쳐 주셨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전이었던 최후의 만찬 자리의 분위기였던 것입니다. 누가는 비참하게도 “또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눅22:24)”라고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슬픈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매우 비극적인 장면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나,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갈등은 ‘내가 큰 자다. 나는 높임 받아야 한다. 나는 섬김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해 일어납니다. 스스로를 작고 낮다고 여기고 섬김의 자세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갈등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 다양한 직분들이 있고 각 직분의 권위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 직분이 서로의 크고 작음을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의 법은 큰 자일수록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 아니하고 오히여 더욱 작은 자가 되어서 남을 섬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그런 자들이 큰 자가 되고 높임을 받는 것입니다.
서로 누가 크냐는 문제로 인해서 싸움이 일어난 심각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쉬워 보이는 일이지만, 제자들은 결코 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아니 섬김과 낮아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자, 자신이 종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자는 결코 할 수 없는 행위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다툼이 일어난 그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삶으로 또 다시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심으로, 제자들을 끝까지 섬기심으로, 제자들에게 주님과 같은 진정한 사랑의 삶을 살아갈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랑은 그가 어떻게 반응한다 할지라도 영향 받지 않고 끝까지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몫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랑을 우리도 삶을 통해서 드러내야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사건을 통해서 어떻게 주님께서 많은 이들로부터 높임을 받고 섬김을 받게 되셨는지, 진정으로 큰 자가 되셨는지를 밝히 보이셨습니다. 요한복음을 쓰고 있는 요한은 주님의 이 놀라운 사랑을 기억하면서 최후의 만찬에서의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요13:1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마땅히 섬김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최후 만찬의 잔치의 주인이시고, 그 만찬에서 손님으로서 섬김을 받으셨어야 할 주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아쉽고 안타깝게도 그 날의 만찬에 모인 모든 사람들 사이에, 사도 누가가 그려놓은 것 같이, “누가 더 크냐"는 다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주님의 먼저 섬기신 사랑의 삶을 오랜 세월 동안 함께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주님께서 그들의 곁을 떠나가야 할 시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만찬에서 마지막의 당부로 포도주를 주시고 떡을 떼어 주시며 끝까지 사랑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희생의 깊은 세계를 기념하고 묵상하라고 당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 안에 다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위대한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끄럽게 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주님이 제자들인 우리로 인해서 높임을 받고 있습니까? 여전히 주님과 제자인 우리들의 모습에는 너무나 깊고도 큰 간격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안에 주님께서 보여주신 섬김의 깊은 의미에 대한 진지한 묵상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깊이 묵상하고, 삶으로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형제를 향한 우리의 사랑은 구체적인 종의 섬김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천국에서는 섬기는 자가 큰 자요 주인이라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천국의 주인이 되실 수 있었고, 지금도 천국의 주인이신 것은 종의 모습으로 항상 모든 자들을 섬기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섬김을 받기에 합당하신 주님
제자들로부터 섬김을 받으셔야 하는 최후의 만찬에서조차도 제자들은 주님을 섬기지 못했고 오히려 다투기까지 했습니다. 우리 안에도 제자들처럼 부끄러운 모습들이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최후의 만찬의 자리에서 주님께서는 떽을 떼어 주시며 끝까지 사랑하셨고 주님의 희생을 깊이 묵상하고 당부하셨습니다. 사순절 기간 홀로 가신 그 십자가의 깊은 사랑을 알길 원합니다. 생명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